우리가 흔히 게임에서 사용하는 ‘장르’라는 구분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슈팅, RPG, 시뮬레이션 같은 장르는 각각 특정한 게임들이 만들어 낸 플레이 방식이 반복되며 굳어진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몇 가지 대표적인 장르를 중심으로,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게임이 장르의 틀을 만들었는지"를 간단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슈팅(Shooting)과 FPS(First-Person Shooter)
슈팅(Shooting) 장르는 화면 속 적이나 표적을 조준해 발사하는 '행위 자체'가 중심이 되는 게임 장르입니다. 실시간 반응 속도, 명중률, 패턴 파악 등이 플레이 실력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FPS(First-Person Shooter)는 이러한 슈팅 장르 중에서도,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시점에서 직접 총기나 무기를 사용하는 1인칭 시점 슈팅을 가리키는 하위 장르입니다.

슈팅 장르의 가장 초기 형태로는 1962년 MIT에서 비상업적으로 개발된 Spacewar!가 자주 언급됩니다. 메인프레임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이 게임은, 두 명의 플레이어가 각각 우주선을 조종해 서로에게 포탄을 발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대상을 조준해 맞힌다는 슈팅의 기본 루프를 처음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아케이드 이전 전자 슈팅의 원형으로 평가됩니다.

슈팅 장르를 본격적으로 확립한 작품은 1978년 Taito에서 개발한 Space Invaders입니다. 화면 상단에서 내려오는 적, 하단에 배치된 플레이어, 점수와 웨이브, 점점 빨라지는 난이도 곡선은 이후 수많은 슈팅 게임이 따라 하게 될 공식이 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단순한 히트작을 넘어, 아케이드 슈팅이라는 장르 자체의 템플릿을 만든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FPS 장르의 개념적 출발점으로는 1973년 NASA 아메스 연구 센터에서 개발된 Maze War로 볼 수 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미로를 탐색하며, 다른 플레이어를 발견하면 사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기록상 최초의 1인칭 멀티플레이 슈팅 게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1992년 id Software의 Wolfenstein 3D는 1인칭 시점 슈팅을 대중이 인식하는 ‘FPS 장르’로 정착시킨 작품입니다. 빠른 이동 속도, 키보드·마우스 조작, 레벨 구조와 전투 리듬을 하나의 패키지로 정리하며 FPS의 기본 공식을 완성했습니다.

FPS를 대중화 시킨 것은 1993년 개발된 Doom으로, Wolfenstein 3D가 만든 공식을 한 단계 확장해, 멀티플레이와 모딩, 맵 디자인 등에서 후대 FPS들이 따라 하는 Doom식 구조를 만들어 FPS를 하나의 메인스트림 장르로 확립한 분기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RPG(Role-Playing Game)
RPG는 플레이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성장하고, 선택과 전투를 통해 이야기를 경험하는 장르입니다. 레벨업, 능력치, 장비, 퀘스트 같은 요소들이 RPG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RPG는 처음부터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어진 장르는 아니었습니다. 그 출발점은 1974년에 등장한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Dungeons & Dragons 입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고, 능력치와 주사위 판정을 통해 판타지 세계를 탐험하는 이 게임은 역할을 맡아 서사를 만들어 간다는 RPG의 기본 개념을 처음으로 정리한 작품입니다. 캐릭터의 능력치와 레벨, 전리품, 던전 탐험 구조 등 이후의 디지털 RPG가 가져가는 거의 모든 기본 요소를 제공해 RPG라는 개념 자체의 뿌리가 됩니다.

이후 이러한 구조를 디지털 환경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1981년 Origin Systems에서 개발한 Ultima입니다. 탑뷰 시점의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퀘스트를 수행하는 이 게임은, TRPG의 감각을 컴퓨터 게임 안에서 구현하려 한 초기 디지털 RPG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한편 일본 콘솔 환경에서 RPG를 대중화한 작품은 1986년에 출시된 Dragon Quest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를 맡은 토리야마 아키라는 드래곤볼과 닥터슬럼프로 유명하여 그림체가 익숙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턴제 전투와 명확한 레벨업 구조, 간결한 이야기 전개는 당시 복잡하게 느껴지던 서양식 RPG를 보다 직관적인 형태로 정리해 주었습니다. 이 게임을 통해 ‘JRPG’라고 불리는 하나의 흐름이 자리 잡았고, 이후 일본식 RPG의 틀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시뮬레이션(Simulation)
시뮬레이션 장르는 현실의 시스템이나 직업, 환경을 게임 안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설계된 장르입니다. 이 장르는 도시 운영, 농장 경영, 비행, 인생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가장 초기의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사례로는 The Sumerian Game이 자주 언급됩니다. 이 게임은 뉴욕주 교육협력위원회와 IBM이 교육용 컴퓨터 활용 가능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제작된 텍스트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고대 수메르 도시를 배경으로 곡물 생산과 분배를 조절하며 도시를 운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치를 조정하고, 그 결과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은 이후 경영·도시 시뮬레이션 장르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시뮬레이션 장르를 대중적으로 정착시킨 작품은 1989년 Maxis에서 개발한 SimCity입니다. 플레이어는 명확한 승리 조건 없이, 도시의 구역을 나누고 예산과 인프라를 관리하며 도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지켜보게 됩니다.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시스템을 이해하고 유지하는 과정 자체를 재미로 만든 이 구조는 도시·경영 시뮬레이션을 하나의 확고한 장르로 자리 잡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게임 장르들은, 처음에는 모두 누군가의 실험적인 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한 점과 선, 텍스트와 수치로 이루어진 초기의 게임들은 반복과 변형을 거치며 점점 하나의 틀을 갖춘 장르로 굳어졌습니다. 장르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게임이 단순한 놀이를 넘어 어떻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왔는지도 함께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게임들 역시, 그 긴 실험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oraeng_i1/
'볼거리 > 게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게임 장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 (1) | 2026.01.20 |
|---|---|
| 픽셀 하나에서 시작된 게임의 역사 (1) | 2026.01.06 |
| 우리는 왜 게임을 두려워하는가: 중독과 몰입 사이에서 (1) | 2025.12.23 |